▲ 애경그룹의 뿌리는 애경산업이다. 애경그룹이 최근 그런 애경산업의 매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 씨저널> |
[씨저널] “뿌리깊은 나무는 어떤 세찬 비바람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세종대왕이 조선 왕가의 조상들을 기리기 위해 지은 ‘용비어천가’ 제 2장의 첫 구절이다. 그리고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 애경그룹 60주년 기념사에서 인용한 구절이기도 하다.
애경그룹의 ‘뿌리’는 애경산업이다.
장영신 회장이 전업주부에서 기업인으로 변신해 직접 키워낸 기업이며, 애경그룹 전체의 모태이기도 하다. 항공업도, 유통업도 모두 이 애경산업을 기반으로 시작됐다.
애경그룹은 최근 애경산업의 매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그룹의 뿌리를 잘라내 파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 셈이다.
◆ 장영신과 사실상 ‘한몸’인 애경산업, 애경그룹 모태가 되다
애경산업은 애경그룹 오너 일가의 여러 경영자 가운데서도 특히 장 회장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기업이다.
애경산업의 전신은 애경그룹 창업주인 채몽인 회장이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설립한 ‘대륭산업’이다. 1966년 주방세제 ‘트리오’를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회사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장 회장은 애경그룹 창업주인 채몽인 회장이 1970년 갑작스럽게 타계한 이후 경영 전면에 나섰다. 장 회장은 아내로서의 의리, 그리고 애경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 등이 주부였던 장 회장이 기업의 경영자로 변신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말한 바 있다.
애경그룹은 생활용품 생산 사업과 화학 사업을 주력으로 성장했는데, 1973년 제 1차 석유파동, 그리고 1979년 제 2차 석유파동 등으로 커다란 위기를 맞는다. 이 때 장 회장의 승부수가 바로 ‘애경산업’의 설립이었다.
장 회장은 1984년 영국의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와 합작법인 애경산업을 세운 뒤 애경유지공업(옛 대륭산업)의 생활용품 부문을 인수한다.
애경산업은 자체적으로 생활용품 사업을 전개하는 한편 유니레버의 한국 판매용 화장품을 생산하면서 유니레버의 기술력을 흡수했고, 결국 애경산업은 생활용품·화장품 사업이라는 현재 애경산업의 양대 축을 완성할 수 있게 됐다.
2024년 사업보고서 기준 애경산업의 부문별 매출은 생활용품 4603억 원, 화장품 3323억 원 정도로 매출 비중은 약 1.38:1이다.
이후 애경산업의 ‘2080치약’, ‘케라시스’ 등 대표 브랜드들이 대중화되면서 애경산업은 애경그룹의 핵심 캐시카우로 자리잡았다.
장 회장은 이후에도 애경백화점을 설립하고 국내 최초의 복합쇼핑몰 ‘AK플라자’등도 선보이며 유통 업계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2005년에는 제주항공까지 설립하면서 그룹의 영역을 넓혀갔다. 그야말로 애경산업이 애경그룹 모든 사업들의 모태가 된 셈이다.
단순히 뿌리로서 의미뿐 아니라 애경산업은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도 오랫동안 톡톡히 해왔다.
특히 그룹의 또다른 한 축이었던 제주항공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연속 영업적자를 내는 동안 애경산업은 각각 영업흑자 606억 원, 224억 원, 244억 원, 390억 원을 내면서 그룹을 실질적으로 지탱하기도 했다.
◆ 애경그룹은 왜 애경산업 팔까, 유동성 위기의 한가운데서 ‘팔릴만한’ 계열사
이런 애경산업을 애경그룹이 팔겠다고 나선 이유는 최근 수년 동안 이어진 애경그룹의 유동성 위기 때문이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제주항공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연속 영업적자를 냈고 유통사업을 맡고 있는 에이케이플라자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 연속 영업적자를 냈다. 애경산업과 애경유화만이 꾸준하게 흑자를 내고 있지만 흑자 규모는 수백억 원 수준으로 크지 못하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지주회사 AK홀딩스의 부채비율은 2022년 294.6%, 2023년 310.7%, 2024년 말 328.7%로 계속 증가했다.
적자를 탈출한 제주항공은 저비용항공사(LCC)들의 무한경쟁과 통폐합 속에서 경쟁자들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고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는 애경유화 역시 글로벌 화학 시황 둔화라는 위기 속에 놓여있다.
그룹이 어려울 때 ‘알짜 회사’를 매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부실한 기업은 애초에 시장의 관심을 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애경그룹의 계열사 가운데 가장 현실적인 매각대상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애경산업이다.
크진 않지만 지속적으로 영업흑자를 내면서 다른 계열사와 비교해 비교적 재무 구조가 건전하고 화장품·생활용품이라는 브랜드 포트폴리오도 탄탄해 좋은 값에 팔릴 수 있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 1972년 애경그룹의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할 무렵의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애경그룹> |
◆ 채형석은 어떻게 장영신 설득했을까, ‘상징보다 생존’
문제는 애경산업이 그룹의 모태일 뿐 아니라
장영신 회장의 애착이 가장 큰 회사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재계에서는 애경산업 매각이라는 커다란 결정을 끌어낸
채형석 총괄부회장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채 부회장은 장 회장의 장남으로 1936년생, 올해로 90세를 맞은
장영신 회장을 대신해 사실상 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룹 내의 실질적 의사결정권자인 셈이다.
채 부회장은 유통산업의 침체, 항공산업의 고비용 구조, 화학 부문의 시황 둔화라는 ‘퍼펙트 스톰’ 속에서 그룹의 생존을 위한 해법으로 애경산업 매각 카드를 꺼내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애경산업의 매각은 애경그룹이 과거의 ‘생활용품 기업’에서 항공사업과 화학사업 중심의 새로운 포트폴리오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그룹의 ‘대전환’은 채 부회장이 장 회장을 설득하는 가장 큰 무기였을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애경산업은 애경이라는 브랜드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가장 핵심적 기업”이라며 “그런 회사를 정리하기로 한 결정은 매우 상징적 결정인 동시에 절박한 선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