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건설 실적 후퇴
신동아건설 실적이 크게 감소했다.
신동아건설은 2020년 연결기준으로 매출 5883억 원, 영업이익 122억 원을 거뒀다고 2021년 4월29일 공시했다.
2019년과 비교해 매출은 21.9%, 영업이익 76.3% 줄었다.
실적 감소는 코로나19로 도시정비사업 일정이 밀린 것에 영향을 받았다.
경기도 오산빌리지 소규모 재건축,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대광연립 소규모재건축 등이 2020년 총회를 연기하며 사업이 밀렸다.
코로나19에 따른 착한 임대인운동에 동참한 것도 실적에 부담을 줬다.
신동아건설은 2020년 서울 용산구 신동아쇼핑센터에 입주한 50여 개 상가 소상공인들에게 3개월 동안 임대료를 50% 감면해줬다.
신동아건설은 2021년에는 경기도 양주, 경기도 과천 분양 등을 통해 실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외부 임원 영입
신동아건설이 수주 확대를 위해 외부 임원을 영입했다.
신동아건설은 2020년 1월9일에 윤해식 개발사업1본부장 전무를, 2020년 2월3일에 시대복 사장, 한경훈 토목사업담당 전무를 신규 선임한다고 밝혔다.
시대복 사장은 포스코건설 부사장 출신이다. 포스코건설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며 건축사업본부장과 사업개발본부장을 지냈다.
윤해식 전무는 롯데건설에서 주택개발을 담당한 임원 출신이고 한경훈 전무는 HDC현대산업개발에서 상무보로 토목사업 관련 업무를 맡았다.
신동아건설은 수주 확대를 위해 대형건설사 출신 임원을 영입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2020년 수주액이 1조6천억 원에 이르며 목적을 달성했다는 시선이 나왔다.
시대복 사장은 성과를 인정받아 2020년 12월30일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대표이사에 선임됐지만 2개월 뒤인 2021년 2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시대복 사장은 사장직을 유지하고 있으며 대표이사 후임은 진현기 부사장이 맡게 됐다.
이로써 신동아건설은 대표이사는 김용선, 진현기 공동대표체제가 됐다.
신동아건설은 시대복 사장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이유를 놓고 “내부 사정”이라며 말을 아꼈다.
△신동아건설 9년 만에 워크아웃 졸업
신동아건설이 2019년 워크아웃(기업재무개선작업)을 졸업했다.
신동아건설은 2019년 11월25일 우리은행 등 채권단의 공동관리절차가 끝났다고 밝혔다. 2010년 10월 이후 약 9년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한 것이다.
신동아건설은 2010년 채권단과 경영 정상화 이행약정을 맺고 워크아읏을 시작한 이후 조직개편과 임금조정 등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자산매각 등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15년 이후 4년 연속 영업이익에서 흑자를 냈고 2019년 상반기 기준으로 자본잠식도 해소했다.
신동아건설은 경영 정상화가 이뤄지면 기업신용평가가 개선돼 향후 관급사업 수주에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신동아건설 워크아웃에 들어가
신동아건설이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신동아건설은 2010년 10월29일 우리은행 등 채권단과 경영정상화 이행약정을 맺었다.
2006년 김포 신곡6지구 도시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맞게 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포 신곡6지구 도시개발사업은 3400여 세대의 주택을 건설하는 개발사업으로 사업비는 7900억 원 규모다.
신동아건설은 40% 지분을 보유하면서 시행사 차입금에도 연대보증을 섰다.
하지만 시행사가 추가 자금조달을 하지 못하면서 유동성에 압박을 받기 시작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시장도 장기침체 국면에 들어서면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신동아건설은 연대보증으로 시작된 유동성 압박을 해소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채권단은 2010년 5월25일 신용위험평가을 진행해 신동아건설을 워크아웃 후보로 올렸다.
△신동아건설 본점 이전
신동아건설이 경기도 성남에서 인천시로 본점을 이전했다.
신동아건설은 2009년 12월27일 본점 소재지를 경기도 성남에서 인천시 구월동으로 옮긴다고 밝혔다.
인천시 청라지역 등에서 대규모 개발이 이뤄짐에 따라 인천시 산하기관들이 발주하는 관급공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본점 이전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서울 용산 등에 있던 영업인력들이 인천 본점 소재지로 대거 이동했다. 인천광역시청 건설과 출신인 임창래 전무를 선임하고 수주활동을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아파트 브랜드 파밀리에 내놔
신동아건설이 새 아파트 브랜드를 내놓았다.
신동아건설은 2002년 5월14일 아파트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새 브랜드 '파밀리에'를 선보였다.
파밀리에는 독일어로 '가족'을 뜻하며 가족 중심의 고품격 아파트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브랜드 이름이라고 신동아건설은 설명했다.
브랜드 로고는 자연친화를 의미하는 나뭇잎에 파밀리에를 상징하는 'f'자를 형상화했다.
△신동아건설 인수
김용선이 대주주로 있는 일해토건이 신동아건설을 인수했다.
일해토건은 신동아건설 주채권기관인 산경M&A와 2001년 9월10일 신동아건설 인수계약을 맺었다.
일해토건은 자본잠식상태에 빠진 신동아건설의 채무 870억 원을 떠안는 조건으로 1억7700만 원에 인수에 성공했다.
신동아건설이 추진해온 사업과 직원들의 고용계약도 함께 승계한다는 내용도 인수계약에 담겼다.
신동아건설이 2001년 매각 당시 시공능력평가 42위의 중견건설사였던 것과 비교해 일해토건은 매출 700억 원대의 소형건설사라는 점에서 인수계약은 시장의 눈길을 끌었다.
당시 동신주택도 신동아건설 인수를 추진했는데 일해토건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음에도 인수를 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동신주택에 따르면 동신주택은 일해토건이 내세웠던 870억 원보다 많은 1010억 원을 인수가로 제안했지만 일해토건과 양해각서를 맺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양해각서 체결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에서 일해토건의 신동아건설 인수에 김대중 정부 실세가 개입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나왔다.
△일해토건 성장
김용선이 일해토건 규모를 급격히 키웠다.
김용선은 1986년 신우토목을 설립한 뒤 1999년 회사이름을 일해토건으로 바꾸고 자본금을 45억 원 규모로 늘렸다.
일해토건은 토목공사와 철근공사에 한정됐던 사업영역을 꾸준히 넓혔다.
도로포장, 지하터널에 회반죽을 주입하는 보링공사, 수중공사, 건물해체공사 등으로 사업영역이 확대되며 신규수주 규모가 1995년 290억 원에서 1999년 916억 원으로 3배 이상 커졌다.
일해토건은 신동아건설 인수에 성공하며 회사규모를 더 키울 기회를 잡았지만 2009년 신동아건설 비자금 조성 의혹에 휘말리며 영업활동이 사실상 중단됐다.
매출규모가 줄며 2013년부터는 외부감사 대상에서도 제외된 것으로 파악된다.
외부감사 대상은 직전 사업연도 자산 120억 원 이상, 부채 70억 원 이상, 매출 100억 원 이상, 종업원 수 100명 이상 가운데 2가지 이상의 요건을 충족한 회사다.
△신동아건설의 과거와 현재
신동아건설은 1977년 신동아그룹 계열사로 세워진 건설회사다.
1978년 풍원종합건설, 1981년 신동아해외건설을 합병하며 규모를 키웠고 1985년에는 대한생명 63빌딩을 준공하며 국내 주요 건설사로 자리잡았다.
신동아건설은 1989년 신동아그룹에서 분리됐는데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이 유상근 신동아건설 사장에 지분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후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신동아건설은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고 2001년 김용선이 이끄는 일해토건에 인수됐다.
인수가 이뤄진 뒤에도 2010년 시공능력평가 30위에 오를 정도로 탄탄한 모습을 보였지만 2010년 워크아웃이 시작되며 사세가 위축됐다.
2019년 말 워크아웃을 졸업한 뒤 수주를 늘리며 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0년 시공능력평가 순위 54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