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4-10-31 15: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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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31일 긴급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육성이 담긴 녹취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더불어민주당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공천에 개입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김건희 여사와 주변인들 사이에서 이뤄진 녹취와 달리 윤 대통령의 육성이 담긴 증거가 나오면서 탄핵정국의 ‘판이 요동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실은 즉각 해명에 나섰지만 향후 야권 중심으로 진행될 탄핵정국을 방어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3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윤 대통령이 육성이 담긴 녹취를 공개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불법으로 공천에 개입했고 공천 거래가 있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자 헌정 질서를 흔드는 위중한 사안임을 입증하는 물증”이라고 말했다.
공개된 녹취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9일 명씨와 통화에서 “(국민의힘)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말하자 명씨가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민주당에선 윤 대통령 탄핵 문제를 놓고 아직까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윤 대통령을 탄핵을 직접 거론하는 것에 관해 “책임있는 (민주당) 당직자로부터 탄핵 이야기를 듣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들께서 어떻게 보시는지 여론을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신중한 태도를 나타냈다.
그러나 박 원내대표가 ‘헌정질서를 흔드는 위중한 사안’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볼 때 민주당도 탄핵정국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읽힌다.
그동안 나왔던 녹취나 폭로는 공직자가 아닌 김건희 여사에 관한 내용이거나 녹취 내용도 전언이었다. 이와 달리 민주당이 이날 공개한 녹취에는 윤 대통령의 육성이 담겨 있어 ‘탄핵’을 향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31일 MBC라디오 뉴스바사삭에서 “윤 대통령의 육성이 공개된 것은 공천개입의 몸통이 나타난 것”이라며 “민주당이 윤 대통령을 직접 겨냥할 수 있는 물증이 나온 만큼 (탄핵정국의) 판과 차원이 달라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녹취가 공개되자 대통령실에서는 “(당시) 윤석열 당선인은 공천관리위원회로부터 공천 관련 보고를 받은 적도 없고 공천을 지시한 적도 없다”며 “(2022년 재보선) 당시 공천 결정권자는 이준석 당 대표와 윤상현 공천관리위원장이었다”는 입장을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런 대통령실의 입장 표명이 이번 녹취공개로 불거진 ‘윤 대통령 공천개입’ 논란을 가라앉히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경선 과정 이후 명씨와 연락을 끊었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날 민주당이 공개한 녹취의 통화시점이 대통령 취임 하루 전인 2022년 5월9일인 만큼 과거 해명이 녹취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대통령실의 입장과 관련해 “지금 상황에서 이렇게 변명하다니 말미잘도 이것보다는 잘 대응할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공천관리위원회에서 보고를 받는 줄 알지 못했고 후보 측 관계자에게 이런 내용을 전달하는지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이번 녹취의 내용은 윤 대통령이 직접 당의 공천관리위원회에 특정 인물을 공천하라는 압력을 행사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사유보다 사안 자체가 더 무겁다는 시각도 있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기소한 박 전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20대 총선을 앞둔 2015년과 2016년 박 전 대통령이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을 통해 친박계 인물들의 총선 여론조사를 실시한 뒤 선거 전략을 수립하고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에 관여한 것을 승인·공모했다는 내용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사건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MBC뉴스바사삭에서 “선거 여론조사만 해도 징역 2년이 나오지 않았나”라며 “그런데 이번 사안은 사실상 공천을 주는 압력을 행사한 걸로 '검사' 윤석열이 '대통령' 윤석열의 목을 조일 것”이라고 말했다.
▲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소상공인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축사를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명씨와 윤 대통령의 통화시점이 대통령 취임 하루 전이라 탄핵을 위한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공직선거법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적용하는 대상은 공무원 신분인 자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도 통화가 이뤄진 시점에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었다며 문제가 없다는 견해가 나왔다.
친윤(친윤석열)계 의원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탄핵 사유라는 것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 직무를 하면서 헌법과 법률에 위반하는 중대한 행위가 있을 경우”라며 “대통령 당선인 입장에서 자신의 정치적인 의견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걸(민주당 녹취) 가지고 무슨 선거 개입이니, 공직선거법상 선거 관여니, 선거 개입이니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너무 나간 주장”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었음에도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된다는 견해도 있다.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 결정이 공식 발표된 시점은 대통령에 취임한 2022년 5월10일이었으므로 윤 대통령의 발언이 실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검사 출신인 김용남 전 개혁신당 정책위의장은 JTBC 장르만여의도에 출연해 “통화는 하루 전이지만 김 전 의원 공천확정이라는 결과물이 대통령이 취임한 뒤(오후)에 나왔기 때문에 당선인 신분이라는 점으로 공직선거법 위반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행위가 영향 미치는 게 5월10일 (공천) 발표”라며 “대통령 임기 중에 일어난 일로 법적 판단한다”고 말했다.
탄핵을 공개적으로 추진하던 조국혁신당 등 다른 야당들은 윤 대통령의 육성 녹취를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으로 여기며 향후 탄핵정국을 더욱 가속화시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이제 헌법수호를 위해 모든 정당은 탄핵추진열차에 탑승해달라”고 적었고 정혜경 진보당 원내대변인도 “국회는 탄핵으로 답해야한다”는 논평을 냈다.
특히 민주당은 앞으로 공개할 녹취가 더 있다고 밝힌 만큼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맞물려 탄핵정국이 더욱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도 이번 윤 대통령의 육성 녹취 공개에 당황한 듯 이렇다 할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중진의원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당에서 추가로 파악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는 사무총장 등 당무를 보는 쪽에서 하지 않을까 싶다”면서도 “그럴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현재는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동훈 대표는 '민주당이 대통령 통화 녹취를 공개했는데 어떻게 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