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하이텍 흑자전환과 사상 최고 실적
최창식은 DB하이텍 최고경영자(CEO)에 올라 영업수지 적자였던 회사를 흑자로 돌려놓고 사상 최고 실적을 이끌었다.
DB하이텍은 2020년 1분기 매출 2258억 원, 영업이익 647억 원으로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썼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경기가 타격을 입었음에도 서버와 PC 등 비대면 관련 수요 호조가 실적을 뒷받침했다.
DB하이텍은 2019년에도 매출 8074억 원, 영업이익 1813억 원으로 연간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을 내는 등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8인치 파운드리 수요 확대로 가동률이 100%에 근접하게 유지됐다.
이 같은 호실적에 힘입어 최창식은 2020년 3월 DB하이텍 대표이사에 재선임됐다. 2020년 7월에는 김남호 회장 취임 이후 첫 그룹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해 역할을 확대했다.
동부하이텍은 동부그룹 부실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고 채권단이 매각을 추진하는 등 애물단지였으나 최창식체제에서 알짜기업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최창식은 2012년 3월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의 제조업 육성 의지에 따라 동부하이텍 대표이사 사장으로 영입됐다. 기존 박용인 사장과 함께 각자대표체제를 이루다가 2014년 과학기술부총리를 역임한 오명 회장까지 3인 대표로 일했다. 박용인 사장과 오명 회장이 차례로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면서 단독대표로 남았다.
동부하이텍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영업적자를 이어오고 있었다. 최창식 취임 후인 2012년 156억 원, 2011년 96억 원으로 적자폭이 줄어들다가 최창식이 단독대표를 맡은 첫 해 2014년에 영업이익 456억 원을 내며 흑자로 전환했다.
자산 매각으로 차입금을 줄이고 설비 국산화와 경비 절감 등 원가 개선, 팹리스 고객 확대와 고부가 중심 제품구조 개선 등이 실적 반등을 뒷받침했다. 스마트폰시장이 커지면서 전력반도체, 이미지센서, 터치센서 등의 수요가 커졌고 초고화질TV향 디스플레이구동칩도 호조를 보였다.
최창식은 미국, 중국, 일본, 대만을 찾아 해외 거래선 확보에 힘을 쏟는 한편 제조공정 기술 개발, 고부가 신제품 출시 등으로 회사의 경쟁력을 높였다. 파운드리보다 수익성이 높은 자체 브랜드사업도 강화했다.
△삼성전자 태양광사업 맡아
삼성전자가 5대 신수종사업 중 하나로 제시한 태양광사업을 책임졌으나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2009년 말 연구개발조직이던 태양전지조직을 광에너지사업팀으로 확대개편하고 최창식을 보임했다. 상무급이던 책임자를 부사장급으로 격상하고 50여 명의 인력을 200여 명으로 확대개편했다. 2015년 업계 1위를 목표로 2011년 상반기에 태양전지 양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최창식은 2010년 2월 '세계태양에너지엑스포 2010' 참가를 시작으로 독일, 미국 등 태양광전시회에 잇따라 참가하며 업계 최고 수준의 태양전지와 모듈을 선보였다. 2011년 2월 세계태양광에네지엑스포 2011에도 참가해 260W 최고출력, 15.9% 고효율 태양광 모듈을 전시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태양광사업은 빛을 보지 못했다. 기술 발전과 사업 추진속도가 더디자 양산을 앞둔 2011년 5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삼성전자 태양광사업은 삼성SDI로 이관됐다. 최창식도 삼성SDI로 함께 이동했다.
최창식은 삼성SDI 태양광사업 이관이 결정된 뒤에도 "이제부터가 진짜 경쟁"이라며 "삼성SDI와 태양광사업의 시너지가 크다"고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2011년 말 삼성SDI가 태양광사업의 방향을 최창식이 집중해온 결정질 태양전지가 아닌 박막 태양전지쪽으로 잡으면서 최창식은 자문역으로 물러났다.
△삼성전자 D램 개발과 비메모리 사업 기여
최창식은 1981년 동부산업 기술개발실로 입사해 동부그룹과 인연을 맺었으나 1983년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겨 오래 근무했다.
삼성전자에서 초기에는 D램 개발 분야에서 일했다. 64㎅와 256㎅ 개발에 참여했고 1984년 256㎅ D램 개발 공로로 회장상을 받았다.
미국으로 유학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D램 개발팀장으로 256㎆ D램을 개발해 1994년 또다시 회장상을 받았다.
이후에는 주문형반도체(ASIC) 제품기술팀장, D램복합칩(MDL) TF팀장, 시스템온칩(SOC) 제품기술팀장, 시스템LSI DDI개발실장 등을 거치며 비메모리 제품 개발을 주도했다.
2005년 시스템LSI 제조센터장을 맡아 비메모리반도체 생산을 책임지게 됐다. 파운드리사업 확대를 위해 IBM, 차터드 등과 손잡고 자산을 공유하는 협력모델 ‘커먼플랫폼’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2006년 10월 퀄컴의 90나노 모바일칩 생산에 성공했다.
2008년 ARM이 커먼플랫폼에 합류하고 협력범위는 28나노까지 확대됐다. 2009년에는 커먼플랫폼에 기대 미국 자일링스로부터 프로그래머블(FPGA) 반도체 생산계약을 맺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