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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박안나 기자  annapark@businesspost.co.kr  |  2020-01-17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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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 생애

조정호는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다.

전문경영인체제와 성과주의를 기반으로 메리츠금융지주를 금융그룹으로 키워냈다.

1958년 10월5일 인천에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4남으로 태어났다.

미국 보스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에서 금융전공으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한항공에 차장으로 입사해 구주지역본부에서 일하다가 한일증권으로 이직하면서 증권금융업에 발을 디뎠다. 한진투자증권을 거쳐 한진그룹 계열 동양화재해상보험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형제들 가운데 가장 먼저 한진그룹에서 독립했다. 한진투자증권과 동양화재를 메리츠증권과 메리츠화재로 회사이름을 바꾸고 메리츠증권 회장에 올랐다.

부친인 조중훈 창업주가 세상을 뜨자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 한불종금 등 3개 금융회사를 계열분리했고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 메리츠종합금융 등 3개 계열사를 토대로 메리츠금융그룹을 출범시켰다.

지주사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으로 취임했으나 보수와 배당으로 136억 원을 받은 것이 알려지면서 비판이 일자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한동안 메리츠종금에서 미등기임원 신분으로 상근회장을 맡다가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으로 복귀했다.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별세한 뒤 조 전 회장의 자녀들이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줄지를 놓고 주목받기도 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이 갈등이 수면위로 떠오르자 ‘대를 이은 한진가 상속 분쟁’이라며 조정호를 포함한 한진가 2세들이 선친의 타계 뒤 보였던 경영권 분쟁에 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경영활동의 공과

△조정호의 성과주의 인사
메리츠금융그룹은 2019년 12월 메리츠종금증권과 메리츠화재의 2020년 임원인사를 실시했다.

메리츠종금증권에서는 부사장 3명, 전무 4명, 상무 3명, 상무보 4명이 탄생했고 메리츠화재에서는 부사장 2명 전무 1명 상무 5명 상무보 3명이 나왔다.

2019년 메리츠종금증권은 투자금융(IB)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사업 분야에서 특히 높은 성과를 보였다. 해당 사업분야 임원 3명이 그 성과를 인정받아 부사장 승진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메리츠금융그룹의 2020년 임원인사를 놓고 조정호의 철저한 ‘성과 보상주의’가 잘 나타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정호의 인재경영방식을 놓고 김용범 메리츠화재 대표이사 부회장은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와는 몸값 흥정을 하지 않는다”며 “연봉은 달라는 대로 주고 업무는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 메리츠금융지주 실적.
△메리츠종금증권 실적 승승장구 
조정호가 힘을 실어줬던 메리츠종금증권은 국내 증시 침체에도 2018년 1분기부터 7분기 연속 순이익 1천억 원 이상을 내는 등 실적 호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문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다. 그동안 메리츠종금증권은 종합금융면허로 발행할 수 있었던 발행어음형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덕분에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높은 수익을 내며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2020년 4월로 다가온 종합금융면허 만료를 앞두고 사업 다각화를 이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연결기준 2019년 3분기까지 매출 8조6712억 원, 영업이익 4536억 원, 순이익 3916억 원을 냈다. 2018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은 46.75%, 영업이익은 12.50%, 순이익은 22.50% 늘었다.

△최희문과 김용범 부회장 승진
메리츠금융그룹은 2017년 12월26일 2018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최희문 메리츠종금증권 대표이사와 김용범 메리츠화재 대표이사가 각각 부회장으로 승진했다고 밝혔다.

최 대표와 김 대표는 메리츠종금증권과 메리츠화재 모두 2017년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늘어나는 등 사상 최대 실적을 낸 데 힘입어 나란히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메리츠금융지주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철저한 성과보상 원칙에 따라 사상 최대 이익을 내면서 안정적 성장을 이끌어온 임원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며 “메리츠금융은 이를 통해 더욱 성장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3분기까지 메리츠종금증권과 메리츠화재는 2018년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순이익이 각각 22.50%, 18.17% 늘었다.

최 부회장은 조정호가 삼고초려 끝에 영입에 성공한 인물로 조정호는 거듭 거절의사를 밝히는 최 부회장에게 “단기 실적을 묻지 않을 것이며 기업문화 등 전권을 주겠다”며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회장은 2011년 메리츠종금증권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조정호가 영입했다.

두 사람 모두 조정호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메리츠부동산자산운용 신설
메리츠금융지주가 2016년 3월 해외부동산 대체투자를 전담하는 메리츠부동산자산운용을 신설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메리츠부동산자산운용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메리츠부동산자산운용은 해외부동산 대체투자를 전담하며 개인이 아닌 기관을 대상으로 사업을 한다. 

메리츠부동산자산운용 수장으로 현대자산운용 대체투자팀에서 근무했던 신준현씨가 내정되면서 현대자산운용 대체투자팀의 핵심인력들이 대거 흡수됐다. 

현대자산운용은 부동산운용본부가 약 90%를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을 만큼 해외 부동산에 특화한 회사로 꼽힌다.

△조정호 메리츠종금증권 유상증자에 사재 출연
2014년 9월 메리츠금융지주가 사업 확대를 위해 추진한 1663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서 조정호가 사재 1175억 원을 넣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유상증자 성공으로 자기자본 규모가 1조6천억 원 대로 늘어났다.

당시 조정호가 메리츠종금증권 사업을 놓고 자신감과 함께 책임감을 보였다는 말이 나왔다.

조정호가 유상증자 참여를 계기로 경영전면에 본격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복귀하지는 않았다. 

조정호는 2013년 6월 지배구조를 투명화하고 전문경영인체제를 만들기 위해 메리츠금융과 메리츠화재 회장 자리에서 사퇴했다. 그러다 2014년 3월 9개월 만에 등기이사에 다시 올랐다.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 청산
메리츠금융지주가 2014년 6월18일 IT자회사인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 청산을 완료했다.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는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의 IT인력을 합쳐 2008년 출범한 회사다.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2011년 계열사로 편입됐지만 3년 만에 청산됐다.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는 2012년 순이익이 5억 원에 불과했는데 이마저도 내부매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자립성이 없는 회사로 평가됐다.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 청산으로 메리츠금융의 계열사는 기존 7개에서 6개로 줄어들었다.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에서 일하던 IT인력 300여 명은 메리츠화재(200명)와 메리츠증권(100명)으로 각각 복귀했다.

△리츠파트너스, 메리츠금융서비스로 회사 이름 변경
메리츠금융지주 계열사 리츠파트너스가 2013년 4월1일부터 ‘메리츠금융서비스’로 이름을 바꿔 새롭게 출발했다.

메리츠금융서비스는 이름 변경을 계기로 재무설계 상담을 주로 담당했던 리츠파트너스를 종합금융상품판매 전문회사로 발돋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메리츠금융서비스의 전신인 리츠파트너스는 2009년에 설립된 자본금 140억의 GA(독립법인대리점)이다. 메리츠금융지주가 100% 출자했다.

메리츠금융서비스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 종합금융상품판매 산업은 선진국에 비해 초기 단계로 소규모 업체들이 난립해있다”며 “메리츠금융서비스와 같은 대기업 계열 금융자본들이 적극적으로 시장에 진출해 소비자 중심의 금융상품 유통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메리츠금융지주회사 출범
메리츠금융지주가 2011년 3월28일 출범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그룹의 모회사였던 메리츠화재가 자기 주식, 자회사 주식, 현금성 자산 일부를 분할하는 인적분할 방식으로 설립됐다. 메리츠금융지주는 국내 최초의 보험사인 메리츠화재가 국내 최초로 보험지주를 설립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당시 국내 금융지주사로는 은행 중심의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KB금융지주, SC금융지주와 증권 중심의 한국투자금융지주 등이 있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당시 메리츠화재, 메리츠종금증권, 메리츠자산운용,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 리츠파트너스, 메리츠비즈니스서비스 등 6개사를 자회사로 두게 됐다. 

메리츠금융지주는 2019년 3월 현재 메리츠화재, 메리츠종금증권, 메리츠캐피탈, 메리츠자산운용, 메리츠대체투자운용, 메리츠금융서비스, 메리츠비즈니스서비스, 메리츠코린도보험 등을 8곳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 비전과 과제 
▲ 2011년 3월28일 서울 역삼동 메리츠타워에서 열린 메리츠금융지주 출범식에서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가운데)과 원명수 메리츠화재 부회장(왼쪽), 최희문 메리츠금융지주 사장(오른쪽)이 기념떡을 자르고 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알짜 금융지주사로 평가받는다. 2017년에는 메리츠금융지주 계열사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종금증권은 순이익이 전년보다 30% 급증하며 사상 최고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2020년 종금업 라이선스 만료를 앞두고 있는 만큼 라이선스 반납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일환으로 메리츠종금증권은 종금업 라이선스 없이도 기업 신용공여(대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2017년 자기자본을 3조 원까지 불려 종합금융투자사로 발돋움했고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이 필요한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도약도 준비하고 있다. 

2019년 3분기 별도 재무제표 기준 메리츠종금증권의 자기자본은 3조6439억 원까지 늘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정부의 부동산금융 관련 규제가 강화되면서 그동안 주요 수익원이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분야에서 이전과 같은 성장세를 이어가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규제 강화로 메리츠종금증권은 2021년 7월까지 2조3천억 원 수준의 우발채무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에 따라 부동산금융 경쟁력을 살려 해외진출을 시도하거나 항공기금융에 적극 나서는 등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쏠린 메리츠종금증권의 사업구조를 다각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조정호가 메리츠금융지주의 높은 부동산 위험노출액(익스포저, Exposure)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2019년 11월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메리츠금융지주는 2015년 이후 주력 계열사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급증해 향후 부동산시장 여건 변화에 따라 그룹 차원 수익 변동성과 재무부담 확대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2019년 6월 말 기준 주력 자회사가 보유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위험노출액은 12조4천억 원으로 연결자본 대비 204%에 이른다. 매입확약 등 기타 부동산 관련 위험노출액도 8조6천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신용평가는 메리츠금융지주가 부동산금융을 중심으로 주요 계열사 사이 공동투자를 확대해온 만큼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 그 위험이 그룹사 전체로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2011년 부동산금융시장에 진출한 뒤 '미분양 담보대출확약'이라는 상품을 개발해 높은 이익을 거뒀다. 201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증권, 보험, 캐피탈 등 주요 계열사 사이 공동투자를 하면서 대형 거래의 인수역량을 높였다. 

이 때문에 계열사 사이 위험이 연결돼 있어 유사시 그룹사 전체로 리스크가 확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평가
▲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왼쪽)이 2012년 3월13일 프로골퍼 5명 후원식에서 박상현 프로와 악수를 하고 있다.
외부에 노출되는 일이 거의 없는 은둔형 경영자로 꼽힌다.

'한진가(家)의 막내가 메리츠가(家)라는 새 명문가문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정호가 회사의 외형을 확대하면서 실적을 견고하게 이어올 수 있던 비결로 차별화된 경쟁력 구축이 꼽힌다. 금융업계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면서 조정호의 리더십을 조명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인재 중심의 전문경영인체제와 성과 보상주의 기업문화를 내세워 회사의 경쟁력을 차별화했다. 김용범 메리츠화재 사장은 조정호를 놓고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와 몸값 흥정을 하지 않고 연봉은 달라는 대로 주고 업무는 믿고 맡긴다”고 설명했다.

지주사를 총괄하고 있으나 각 계열사의 전문경영인들이 소신경영을 할 수 있도록 경영전권을 맡기고 있다. 그는 사람이 전부라는 경영철학을 근간으로 인재들을 채용했고 이를 바탕으로 그룹의 성장을 이끌었다.

조정호의 '인재중심 경영'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가족중심 경영'과 비교되기도 한다.

조정호는 계열사를 분리할 때 주식자산이 네 형제들 가운데 1450억 원으로 가장 적었으나 현재 1조2천억 원 정도로 가장 많아졌다.

조정호는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형식에 얽매이는 것들을 회사에서 없앴다. 회사에서 전자결재, 자율복장제, 정시퇴근 등을 도입해 이를 고유의 기업문화로 정착했다. 이를 통해 메리츠금융지주에서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속출했고 이직률도 크게 감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직원들이 성과를 낸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기존에 고정급은 높고 성과급이 낮은 임금체계 대신 성과에 따라 수익의 절반을 인센티브로 되돌려주는 임금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성과가 있는 곳에 파격적으로 보상하라’는 조정호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메리츠종금증권은 다른 증권사와 마찬가지로 영업지점을 20개에서 5개로 확 줄였다. 하지만 영업직군 자리는 늘려 초대형 거점점포로 만들었다. 영업직군에는 ‘신임금체계’를 도입했다.

증권과 종금을 합병해 메리츠종금증권을 출범했는데 이를 두고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최초로 보험금융지주 시대를 연 주인공으로 평가받는다.

아이엠투자증권의 인수합병을 결정해 메리츠종금증권의 몸집을 불렸다. 이 때문에 2016년 7월에 하이투자증권이 매물로 나왔을 때 메리츠종금증권에서 인수를 시도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메리츠종금증권 측에서 부인했다.

조정호의 모친 김정일이 2016년 12월15일에 별세하면서 서울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형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과 함께 조문객을 맞았다. 조정호와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은 조양호 회장과 사업권 등을 놓고 다투게 되면서 거의 얼굴을 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에서 형제들이 조문객을 제각기 따로 맞이하고 장례비용도 조양호 회장이 사비로 처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9년 4월8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별세하고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빈소가 마련되자 4월13일 조문했다. 두 시간가량 빈소에 머물며 조 회장의 가족과 대화를 나눴으나 기자들의 질문에는 아무 대답 없이 자리를 떠났다.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등과 ‘월가(Wall Street)회’ 모임을 통해 교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 워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모교인 대처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자택이 서울 한남동에 있다.

◆ 사건사고 
▲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2019년 6월26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해외 상속계좌 미신고 혐의 선고공판에 출석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상속세 불복 조세심판 청구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을 비롯한 한진가 2세 4명이 2018년 7월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스위스 계좌 등 해외 상속분에 부과된 상속세가 부당하다면서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한 사실이 2020년 1월5일 뒤늦게 알려졌다.

2018년 4월 국세청은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스위스 계좌 재산 등을 놓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해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조현숙 등 범 한진가 2세에게 상속세와 가산세 명목으로 852억 원을 부과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결과 범한진가 2세들이 상속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2018년 5월 범한진가 2세들은 국세청이 부과한 852억 원 가운데 192억 원을 먼저 납부하고 나머지는 5년에 걸쳐 나누어 내기로 했다. 

하지만 범한진가 2세들은 그로부터 두 달 뒤인 2018년 7월 상속세 누락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상속세와 가산세 부과가 부당하다며 불복심판 청구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심판 청구 당시 조양호 전 회장은 살아 있었으며 2006년 별세한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을 대신해 배우자 최은영 전 한진해운 사장도 같은 내용의 심판을 청구했다.

조세심판원에 따르면 이번 불복심판에서 범한진가 2세들의 청구가 받아들여지면 상속세 처분은 취소되는 것으로 확정된다.

△해외 상속계좌 미신고 혐의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은 형제인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과 함께 선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2002년 사망하면서 450억 원에 이르는 스위스 예금 채권을 상속받고도 상속세 신고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2018 10월 검찰은 상속세 신고 불이행 혐의로 벌금 20억 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사건을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2019년 4월 사망한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혐의는 공소기각 처리됐지만 남은 두 형제는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2019년 5월 서울남부지법 형사12단독 김유정 판사 심리로 진행된 결심공판에서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은 “그동안 형제간 여러 다툼이 있었다”며 “얼마 전 조양호 회장이 사망하고 나니 모든 게 아쉽고 허무하다”고 말했다. 

그는 “상속재산 일로 형사법정에 서게 돼 죄송하게 생각한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도 “저 역시 같은 마음”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재판부에 말했다.

2019년 6월26일 두 형제는 각자 벌금 20억 원씩을 선고받았다.

벌금형이 선고됨에 따라 조정호는 메리츠금융지주 사내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따르면 금고형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임원 자격이 박탈돼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청와대 출신 낙하산 영입 논란 
메리츠금융지주가 2019년 3월 한정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을 브랜드전략본부장을 임명하면서 조정호가 덩달아 구설수에 올랐다. 

한 상무는 SBS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직후 청와대 행정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메리츠금융지주는 그룹 차원의 브랜드 전략을 수립하고 언론 홍보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한 전 행정관을 영입했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청와대 방패막이’로 영입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한 전 행정관은 금융 관련 경력이 전혀 없는 데다 조정호가 2018년 6월 조세포탈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았던 만큼 청와대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메리츠종금증권은 2018년 7월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2016년 8월1일부터 은행과 저축은행에 적용되던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모든 금융회사로 확대되면서 조정호도 메리츠금융지주의 최대주주로서 대주주 적격성 심사대상에 포함됐다. 

조정호와 함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등도 심사대상에 올랐다. 

조정호를 비롯한 재벌 총수들은 2017년 초 심사에서 ‘적격’ 판정을 받았다. 

△조정호, 고액연봉으로 회장에서 물러나
2013년 6월 수십억 원의 고액 연봉으로 논란을 빚자 메리츠금융지주와 메리츠화재 등기임원에서 물러났다. 또 두 회사의 회장에서도 물러났다.

고액연봉 논란으로 당시 김영주 민주당 의원에 의해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50억 원의 성과급 수령을 포기하면서 증인채택이 철회됐다.

김 의원은 “3사로부터 중복해 성과급을 받는 문제는 원칙적으로 해소됐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번 국감에서 금융지주 회장들이 경기상황과 수익을 고려하지 않고 부당하게 고액연봉을 받는 것을 지적하려 했다"며 "하지만 증인 채택 후 미수령한 성과급 50억 원을 포기하고 연봉 개선 의지를 보여준 조 회장에 대해서는 증인 채택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조정호는 2012년 연봉과 배당금으로 2012년 메리츠금융지주 순이익(960억 원)의 14%가 넘는 136억 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메리츠금융지주의 2012년 순이익은 2011년(3095억 원)에 비해 68%나 줄어든 것이었다.

조정호는 2012년 메리츠금융지주로부터 11억 원, 메리츠종금증권 28억 원, 메리츠화재 50억 원 등 모두 89억 원을 보수로 받았고 또 이와 별도로 47억 원의 배당금을 수령했다.

조정호는 사임 후 9개월 만인 2014년 3월 메리츠금융지주 사내이사로 복귀했다.

메리츠금융그룹 관계자는 “메리츠금융지주 최대주주인 조정호가 등기이사직을 맡아 책임경영을 펼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복귀를 결정했다”며 “대주주의 책임 있고 투명한 경영철학을 통해 사회적 책임과 성장을 동시에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념관 소송
2008년 2월 조정호가 조양호 회장과 정석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및 상속지분 이전소송’을 제기했다.

조정호는 조 창업주의 사가인 부암장의 기념관 조정 약속 불이행에 따른 1억 원의 정신적 피해 보상과 부암장의 상속지분 이전등기 이행을 조양호 회장과 정석기업에 요구했다.

조양호 회장은 2004년 ‘아버지가 생전에 흉상을 이곳에 세워달라는 유지를 남겼다’며 기념관 건립을 기정사실화했으나 공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는 “큰형(조양호 회장)이 약속한 기념관사업을 선대회장 사후 5년이 넘도록 기본계획조차 세우지 않고 있다”며 “부암장을 사유재산화하고 고인의 유지를 훼손하는 행위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어 법원에 하소연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후 양 측은 2011년 서울고법이 제시한 화해 권고안을 양측이 수용하여 소송이 일단락됐다. 화해안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브릭트레이딩’ 소송전
2006년 조정호와 조남호 회장은 “한진그룹이 삼희무역을 설립해 ‘브릭트레이딩’이 대한항공과 독점으로 형성하고 있던 납품권을 빼앗아갔다”며 조양호 회장과 원종승 한진그룹 전무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조남호 회장측은 “고 조중훈 회장이 4형제가 순이익을 공평하게 분배받도록 설립한 브릭트레이딩을 제쳐두고 삼희무역을 세워 이익을 독점하려했기 때문에 소송을 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고 조중훈 회장은 4형제에게 계열사를 각각 상속했고 형제들은 이에 합의했다"며 "대한항공에 의지해 운영되는 브릭트레이딩사를 조양호 회장 몫으로 하는 것에 다른 형제들도 묵시적으로 동의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납품업체를 변경한 것은 통상적 경영권 행사로 볼 수 있다"고 원고 패소를 판결했다.

△정석기업 지분 둘러싼 소송전
2002년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별세하자 2005년 그룹의 지주회사였던 정석기업의 지분을 두고 소송전이 벌어졌다. 차남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가 장남 조양호 회장에게 유산 분배와 관련해 선친의 생전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소송을 걸었다.

이 소송은 조정호와 조남호 회장이 정석기업 주식 일부를 증여받으며 일단락됐다. 숙부인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과 외숙부 김성배 한진관광 고문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6만9057주를 조남호 회장에게 3만4528주, 조정호에게 3만4529주를 각각 증여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당시 한진그룹 지배구조에서 정석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다. 정석기업→한진→대한항공→정석기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의 정점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정석기업의 주인이 누가 되느냐’가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누가 손에 넣는가’라는 문제로 직결되는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 소송이 발생한 것이다.

이후 형제는 그룹의 사업권, 재산 등을 둘러싸고 수 차례에 걸쳐 소송전을 벌였다.

◆ 경력

1983년 대한항공 구주지역본부 차장으로 입사했다. 

1984년 대한항공 구주지역본부 부장으로 승진했다.

1989년 한일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1년 한일증권 상무이사에 올랐다.

1993년 한일증권 전무이사로 승진했다.

1995년 동양화재해상보험 전무에 올랐다.

1996년 동양화재해상보험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1997년 한진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1999년 한진투자증권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2000년 한진투자증권을 전신으로 하는 메리츠증권의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았다.

2000년 동양화재보험의 사명이 메리츠화재로 바뀌고 이사에 올랐다.

2000년 메리츠화재 전무이사를 역임했다.

2000년 메리츠화재 전무이사를 부사장을 맡았다.

2000년 메리츠종합금융이 출범하자 이사로 지냈다. 

2003년 메리츠증권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됐다.

2007년 6월 메리츠화재해상보험 상근회장과 비상근이사를 지냈다.

2011년 8월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에 올랐다.

2013년 6월 고액 연봉 논란을 의식해 메리츠금융지주와 메리츠화재 회장에서 물러났다.

2014년 3월 메리츠금융지주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경영일선에 다시 복귀했다.

◆ 학력

1978년 미국 보스턴의 사립고등학교인 대처(THACHER)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처고등학교는 조지 워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졸업한 학교다.

1983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4남1녀 가운데 4남으로 태어났다. 모친인 김정일은 2016년 12월15일 타계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 2006년 별세한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이 형이다. 조수호 전 회장 부인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이 형수다. 여자형제로 조현숙씨가 있다.

조양호 회장의 자녀들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민 한진칼 전무 겸 정석기업 부사장 등이 조정호의 조카다.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차녀 구명진씨와 결혼해 슬하에 조원기씨, 조효재씨, 조효리씨 등 1남2녀를 뒀다. 처제가 구지은 캘리스코 대표다.

장모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둘째딸 이숙희씨다. 이를 두고 조정호가 한진과 삼성, LG의 3대 그룹을 연결하는 인간고리 역할을 한다는 말도 있다.

◆ 상훈

◆ 기타

2019년 09월30일 기준 메리츠금융지주의 지분 68.97%를 지니고 있는 최대주주다. 메리츠종금증권 지분 1.01%도 보유하고 있다. 2020년 1월8일 종가 기준으로 보유한 주식 가치만 1조800억 원을 넘는다.

장녀 조효재씨가 메리츠금융지주 지분 0.05%, 메리츠종금증권 지분 0.05%, 메리츠화재 지분 0.03%를 보유하고 있다. 조원기씨와 조효리씨는 메리츠금융지주 관련 지분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조정호는 2019년 상반기에만 메리츠금융지주에서 급여 5억 원, 상여 9억6900만 원, 기타소득 1600만 원 등 14억8500만 원의 보수를 받았다.

메리츠금융지주의 실적이 좋아 배당금도 두둑히 받고 있다. 2018년 결산배당으로 메리츠금융지주에서 455억 원, 메리츠종금증권에서 13억 원을 받았다. 2019년에도 비슷한 수준의 배당금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영주권 보유자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 어록

“국내 최초의 보험지주 금융그룹으로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보다 알차고 강한 전문 금융그룹으로 거듭나자” (2011/08/01, 메리츠금융그룹 회장 취임사)

“양질의 사람들이 와서 일하고 싶은 회사, 명성이 높은 회사를 만들자.” (2009년, 최희문 메리츠증권 부사장을 임명하며)

“소매금융 위주의 영업에서 탈피해 자산운용에 승부수를 걸겠다.” (1997/06/10,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수년 동안 쌓아온 성과가 단 한번의 실수로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냉엄한 곳이 바로 증권시장이다. 종합적 위험관리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전담팀을 만들었다.”  (1997/06/10,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비즈니스포스트 박안나 기자]

◆ 경영활동의 공과

△조정호의 성과주의 인사
메리츠금융그룹은 2019년 12월 메리츠종금증권과 메리츠화재의 2020년 임원인사를 실시했다.

메리츠종금증권에서는 부사장 3명, 전무 4명, 상무 3명, 상무보 4명이 탄생했고 메리츠화재에서는 부사장 2명 전무 1명 상무 5명 상무보 3명이 나왔다.

2019년 메리츠종금증권은 투자금융(IB)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사업 분야에서 특히 높은 성과를 보였다. 해당 사업분야 임원 3명이 그 성과를 인정받아 부사장 승진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메리츠금융그룹의 2020년 임원인사를 놓고 조정호의 철저한 ‘성과 보상주의’가 잘 나타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정호의 인재경영방식을 놓고 김용범 메리츠화재 대표이사 부회장은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와는 몸값 흥정을 하지 않는다”며 “연봉은 달라는 대로 주고 업무는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 메리츠금융지주 실적.
△메리츠종금증권 실적 승승장구 
조정호가 힘을 실어줬던 메리츠종금증권은 국내 증시 침체에도 2018년 1분기부터 7분기 연속 순이익 1천억 원 이상을 내는 등 실적 호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문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다. 그동안 메리츠종금증권은 종합금융면허로 발행할 수 있었던 발행어음형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덕분에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높은 수익을 내며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2020년 4월로 다가온 종합금융면허 만료를 앞두고 사업 다각화를 이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연결기준 2019년 3분기까지 매출 8조6712억 원, 영업이익 4536억 원, 순이익 3916억 원을 냈다. 2018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은 46.75%, 영업이익은 12.50%, 순이익은 22.50% 늘었다.

△최희문과 김용범 부회장 승진
메리츠금융그룹은 2017년 12월26일 2018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최희문 메리츠종금증권 대표이사와 김용범 메리츠화재 대표이사가 각각 부회장으로 승진했다고 밝혔다.

최 대표와 김 대표는 메리츠종금증권과 메리츠화재 모두 2017년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늘어나는 등 사상 최대 실적을 낸 데 힘입어 나란히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메리츠금융지주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철저한 성과보상 원칙에 따라 사상 최대 이익을 내면서 안정적 성장을 이끌어온 임원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며 “메리츠금융은 이를 통해 더욱 성장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3분기까지 메리츠종금증권과 메리츠화재는 2018년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순이익이 각각 22.50%, 18.17% 늘었다.

최 부회장은 조정호가 삼고초려 끝에 영입에 성공한 인물로 조정호는 거듭 거절의사를 밝히는 최 부회장에게 “단기 실적을 묻지 않을 것이며 기업문화 등 전권을 주겠다”며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회장은 2011년 메리츠종금증권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조정호가 영입했다.

두 사람 모두 조정호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메리츠부동산자산운용 신설
메리츠금융지주가 2016년 3월 해외부동산 대체투자를 전담하는 메리츠부동산자산운용을 신설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메리츠부동산자산운용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메리츠부동산자산운용은 해외부동산 대체투자를 전담하며 개인이 아닌 기관을 대상으로 사업을 한다. 

메리츠부동산자산운용 수장으로 현대자산운용 대체투자팀에서 근무했던 신준현씨가 내정되면서 현대자산운용 대체투자팀의 핵심인력들이 대거 흡수됐다. 

현대자산운용은 부동산운용본부가 약 90%를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을 만큼 해외 부동산에 특화한 회사로 꼽힌다.

△조정호 메리츠종금증권 유상증자에 사재 출연
2014년 9월 메리츠금융지주가 사업 확대를 위해 추진한 1663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서 조정호가 사재 1175억 원을 넣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유상증자 성공으로 자기자본 규모가 1조6천억 원 대로 늘어났다.

당시 조정호가 메리츠종금증권 사업을 놓고 자신감과 함께 책임감을 보였다는 말이 나왔다.

조정호가 유상증자 참여를 계기로 경영전면에 본격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복귀하지는 않았다. 

조정호는 2013년 6월 지배구조를 투명화하고 전문경영인체제를 만들기 위해 메리츠금융과 메리츠화재 회장 자리에서 사퇴했다. 그러다 2014년 3월 9개월 만에 등기이사에 다시 올랐다.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 청산
메리츠금융지주가 2014년 6월18일 IT자회사인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 청산을 완료했다.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는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의 IT인력을 합쳐 2008년 출범한 회사다.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2011년 계열사로 편입됐지만 3년 만에 청산됐다.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는 2012년 순이익이 5억 원에 불과했는데 이마저도 내부매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자립성이 없는 회사로 평가됐다.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 청산으로 메리츠금융의 계열사는 기존 7개에서 6개로 줄어들었다.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에서 일하던 IT인력 300여 명은 메리츠화재(200명)와 메리츠증권(100명)으로 각각 복귀했다.

△리츠파트너스, 메리츠금융서비스로 회사 이름 변경
메리츠금융지주 계열사 리츠파트너스가 2013년 4월1일부터 ‘메리츠금융서비스’로 이름을 바꿔 새롭게 출발했다.

메리츠금융서비스는 이름 변경을 계기로 재무설계 상담을 주로 담당했던 리츠파트너스를 종합금융상품판매 전문회사로 발돋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메리츠금융서비스의 전신인 리츠파트너스는 2009년에 설립된 자본금 140억의 GA(독립법인대리점)이다. 메리츠금융지주가 100% 출자했다.

메리츠금융서비스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 종합금융상품판매 산업은 선진국에 비해 초기 단계로 소규모 업체들이 난립해있다”며 “메리츠금융서비스와 같은 대기업 계열 금융자본들이 적극적으로 시장에 진출해 소비자 중심의 금융상품 유통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메리츠금융지주회사 출범
메리츠금융지주가 2011년 3월28일 출범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그룹의 모회사였던 메리츠화재가 자기 주식, 자회사 주식, 현금성 자산 일부를 분할하는 인적분할 방식으로 설립됐다. 메리츠금융지주는 국내 최초의 보험사인 메리츠화재가 국내 최초로 보험지주를 설립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당시 국내 금융지주사로는 은행 중심의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KB금융지주, SC금융지주와 증권 중심의 한국투자금융지주 등이 있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당시 메리츠화재, 메리츠종금증권, 메리츠자산운용,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 리츠파트너스, 메리츠비즈니스서비스 등 6개사를 자회사로 두게 됐다. 

메리츠금융지주는 2019년 3월 현재 메리츠화재, 메리츠종금증권, 메리츠캐피탈, 메리츠자산운용, 메리츠대체투자운용, 메리츠금융서비스, 메리츠비즈니스서비스, 메리츠코린도보험 등을 8곳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 비전과 과제 
▲ 2011년 3월28일 서울 역삼동 메리츠타워에서 열린 메리츠금융지주 출범식에서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가운데)과 원명수 메리츠화재 부회장(왼쪽), 최희문 메리츠금융지주 사장(오른쪽)이 기념떡을 자르고 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알짜 금융지주사로 평가받는다. 2017년에는 메리츠금융지주 계열사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종금증권은 순이익이 전년보다 30% 급증하며 사상 최고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2020년 종금업 라이선스 만료를 앞두고 있는 만큼 라이선스 반납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일환으로 메리츠종금증권은 종금업 라이선스 없이도 기업 신용공여(대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2017년 자기자본을 3조 원까지 불려 종합금융투자사로 발돋움했고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이 필요한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도약도 준비하고 있다. 

2019년 3분기 별도 재무제표 기준 메리츠종금증권의 자기자본은 3조6439억 원까지 늘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정부의 부동산금융 관련 규제가 강화되면서 그동안 주요 수익원이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분야에서 이전과 같은 성장세를 이어가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규제 강화로 메리츠종금증권은 2021년 7월까지 2조3천억 원 수준의 우발채무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에 따라 부동산금융 경쟁력을 살려 해외진출을 시도하거나 항공기금융에 적극 나서는 등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쏠린 메리츠종금증권의 사업구조를 다각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조정호가 메리츠금융지주의 높은 부동산 위험노출액(익스포저, Exposure)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2019년 11월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메리츠금융지주는 2015년 이후 주력 계열사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급증해 향후 부동산시장 여건 변화에 따라 그룹 차원 수익 변동성과 재무부담 확대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2019년 6월 말 기준 주력 자회사가 보유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위험노출액은 12조4천억 원으로 연결자본 대비 204%에 이른다. 매입확약 등 기타 부동산 관련 위험노출액도 8조6천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신용평가는 메리츠금융지주가 부동산금융을 중심으로 주요 계열사 사이 공동투자를 확대해온 만큼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 그 위험이 그룹사 전체로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2011년 부동산금융시장에 진출한 뒤 '미분양 담보대출확약'이라는 상품을 개발해 높은 이익을 거뒀다. 201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증권, 보험, 캐피탈 등 주요 계열사 사이 공동투자를 하면서 대형 거래의 인수역량을 높였다. 

이 때문에 계열사 사이 위험이 연결돼 있어 유사시 그룹사 전체로 리스크가 확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평가
▲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왼쪽)이 2012년 3월13일 프로골퍼 5명 후원식에서 박상현 프로와 악수를 하고 있다.
외부에 노출되는 일이 거의 없는 은둔형 경영자로 꼽힌다.

'한진가(家)의 막내가 메리츠가(家)라는 새 명문가문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정호가 회사의 외형을 확대하면서 실적을 견고하게 이어올 수 있던 비결로 차별화된 경쟁력 구축이 꼽힌다. 금융업계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면서 조정호의 리더십을 조명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인재 중심의 전문경영인체제와 성과 보상주의 기업문화를 내세워 회사의 경쟁력을 차별화했다. 김용범 메리츠화재 사장은 조정호를 놓고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와 몸값 흥정을 하지 않고 연봉은 달라는 대로 주고 업무는 믿고 맡긴다”고 설명했다.

지주사를 총괄하고 있으나 각 계열사의 전문경영인들이 소신경영을 할 수 있도록 경영전권을 맡기고 있다. 그는 사람이 전부라는 경영철학을 근간으로 인재들을 채용했고 이를 바탕으로 그룹의 성장을 이끌었다.

조정호의 '인재중심 경영'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가족중심 경영'과 비교되기도 한다.

조정호는 계열사를 분리할 때 주식자산이 네 형제들 가운데 1450억 원으로 가장 적었으나 현재 1조2천억 원 정도로 가장 많아졌다.

조정호는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형식에 얽매이는 것들을 회사에서 없앴다. 회사에서 전자결재, 자율복장제, 정시퇴근 등을 도입해 이를 고유의 기업문화로 정착했다. 이를 통해 메리츠금융지주에서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속출했고 이직률도 크게 감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직원들이 성과를 낸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기존에 고정급은 높고 성과급이 낮은 임금체계 대신 성과에 따라 수익의 절반을 인센티브로 되돌려주는 임금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성과가 있는 곳에 파격적으로 보상하라’는 조정호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메리츠종금증권은 다른 증권사와 마찬가지로 영업지점을 20개에서 5개로 확 줄였다. 하지만 영업직군 자리는 늘려 초대형 거점점포로 만들었다. 영업직군에는 ‘신임금체계’를 도입했다.

증권과 종금을 합병해 메리츠종금증권을 출범했는데 이를 두고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최초로 보험금융지주 시대를 연 주인공으로 평가받는다.

아이엠투자증권의 인수합병을 결정해 메리츠종금증권의 몸집을 불렸다. 이 때문에 2016년 7월에 하이투자증권이 매물로 나왔을 때 메리츠종금증권에서 인수를 시도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메리츠종금증권 측에서 부인했다.

조정호의 모친 김정일이 2016년 12월15일에 별세하면서 서울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형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과 함께 조문객을 맞았다. 조정호와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은 조양호 회장과 사업권 등을 놓고 다투게 되면서 거의 얼굴을 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에서 형제들이 조문객을 제각기 따로 맞이하고 장례비용도 조양호 회장이 사비로 처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9년 4월8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별세하고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빈소가 마련되자 4월13일 조문했다. 두 시간가량 빈소에 머물며 조 회장의 가족과 대화를 나눴으나 기자들의 질문에는 아무 대답 없이 자리를 떠났다.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등과 ‘월가(Wall Street)회’ 모임을 통해 교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 워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모교인 대처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자택이 서울 한남동에 있다.

◆ 사건사고 
▲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2019년 6월26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해외 상속계좌 미신고 혐의 선고공판에 출석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상속세 불복 조세심판 청구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을 비롯한 한진가 2세 4명이 2018년 7월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스위스 계좌 등 해외 상속분에 부과된 상속세가 부당하다면서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한 사실이 2020년 1월5일 뒤늦게 알려졌다.

2018년 4월 국세청은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스위스 계좌 재산 등을 놓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해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조현숙 등 범 한진가 2세에게 상속세와 가산세 명목으로 852억 원을 부과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결과 범한진가 2세들이 상속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2018년 5월 범한진가 2세들은 국세청이 부과한 852억 원 가운데 192억 원을 먼저 납부하고 나머지는 5년에 걸쳐 나누어 내기로 했다. 

하지만 범한진가 2세들은 그로부터 두 달 뒤인 2018년 7월 상속세 누락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상속세와 가산세 부과가 부당하다며 불복심판 청구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심판 청구 당시 조양호 전 회장은 살아 있었으며 2006년 별세한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을 대신해 배우자 최은영 전 한진해운 사장도 같은 내용의 심판을 청구했다.

조세심판원에 따르면 이번 불복심판에서 범한진가 2세들의 청구가 받아들여지면 상속세 처분은 취소되는 것으로 확정된다.

△해외 상속계좌 미신고 혐의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은 형제인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과 함께 선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2002년 사망하면서 450억 원에 이르는 스위스 예금 채권을 상속받고도 상속세 신고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2018 10월 검찰은 상속세 신고 불이행 혐의로 벌금 20억 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사건을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2019년 4월 사망한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혐의는 공소기각 처리됐지만 남은 두 형제는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2019년 5월 서울남부지법 형사12단독 김유정 판사 심리로 진행된 결심공판에서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은 “그동안 형제간 여러 다툼이 있었다”며 “얼마 전 조양호 회장이 사망하고 나니 모든 게 아쉽고 허무하다”고 말했다. 

그는 “상속재산 일로 형사법정에 서게 돼 죄송하게 생각한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도 “저 역시 같은 마음”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재판부에 말했다.

2019년 6월26일 두 형제는 각자 벌금 20억 원씩을 선고받았다.

벌금형이 선고됨에 따라 조정호는 메리츠금융지주 사내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따르면 금고형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임원 자격이 박탈돼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청와대 출신 낙하산 영입 논란 
메리츠금융지주가 2019년 3월 한정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을 브랜드전략본부장을 임명하면서 조정호가 덩달아 구설수에 올랐다. 

한 상무는 SBS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직후 청와대 행정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메리츠금융지주는 그룹 차원의 브랜드 전략을 수립하고 언론 홍보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한 전 행정관을 영입했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청와대 방패막이’로 영입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한 전 행정관은 금융 관련 경력이 전혀 없는 데다 조정호가 2018년 6월 조세포탈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았던 만큼 청와대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메리츠종금증권은 2018년 7월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2016년 8월1일부터 은행과 저축은행에 적용되던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모든 금융회사로 확대되면서 조정호도 메리츠금융지주의 최대주주로서 대주주 적격성 심사대상에 포함됐다. 

조정호와 함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등도 심사대상에 올랐다. 

조정호를 비롯한 재벌 총수들은 2017년 초 심사에서 ‘적격’ 판정을 받았다. 

△조정호, 고액연봉으로 회장에서 물러나
2013년 6월 수십억 원의 고액 연봉으로 논란을 빚자 메리츠금융지주와 메리츠화재 등기임원에서 물러났다. 또 두 회사의 회장에서도 물러났다.

고액연봉 논란으로 당시 김영주 민주당 의원에 의해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50억 원의 성과급 수령을 포기하면서 증인채택이 철회됐다.

김 의원은 “3사로부터 중복해 성과급을 받는 문제는 원칙적으로 해소됐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번 국감에서 금융지주 회장들이 경기상황과 수익을 고려하지 않고 부당하게 고액연봉을 받는 것을 지적하려 했다"며 "하지만 증인 채택 후 미수령한 성과급 50억 원을 포기하고 연봉 개선 의지를 보여준 조 회장에 대해서는 증인 채택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조정호는 2012년 연봉과 배당금으로 2012년 메리츠금융지주 순이익(960억 원)의 14%가 넘는 136억 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메리츠금융지주의 2012년 순이익은 2011년(3095억 원)에 비해 68%나 줄어든 것이었다.

조정호는 2012년 메리츠금융지주로부터 11억 원, 메리츠종금증권 28억 원, 메리츠화재 50억 원 등 모두 89억 원을 보수로 받았고 또 이와 별도로 47억 원의 배당금을 수령했다.

조정호는 사임 후 9개월 만인 2014년 3월 메리츠금융지주 사내이사로 복귀했다.

메리츠금융그룹 관계자는 “메리츠금융지주 최대주주인 조정호가 등기이사직을 맡아 책임경영을 펼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복귀를 결정했다”며 “대주주의 책임 있고 투명한 경영철학을 통해 사회적 책임과 성장을 동시에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념관 소송
2008년 2월 조정호가 조양호 회장과 정석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및 상속지분 이전소송’을 제기했다.

조정호는 조 창업주의 사가인 부암장의 기념관 조정 약속 불이행에 따른 1억 원의 정신적 피해 보상과 부암장의 상속지분 이전등기 이행을 조양호 회장과 정석기업에 요구했다.

조양호 회장은 2004년 ‘아버지가 생전에 흉상을 이곳에 세워달라는 유지를 남겼다’며 기념관 건립을 기정사실화했으나 공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는 “큰형(조양호 회장)이 약속한 기념관사업을 선대회장 사후 5년이 넘도록 기본계획조차 세우지 않고 있다”며 “부암장을 사유재산화하고 고인의 유지를 훼손하는 행위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어 법원에 하소연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후 양 측은 2011년 서울고법이 제시한 화해 권고안을 양측이 수용하여 소송이 일단락됐다. 화해안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브릭트레이딩’ 소송전
2006년 조정호와 조남호 회장은 “한진그룹이 삼희무역을 설립해 ‘브릭트레이딩’이 대한항공과 독점으로 형성하고 있던 납품권을 빼앗아갔다”며 조양호 회장과 원종승 한진그룹 전무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조남호 회장측은 “고 조중훈 회장이 4형제가 순이익을 공평하게 분배받도록 설립한 브릭트레이딩을 제쳐두고 삼희무역을 세워 이익을 독점하려했기 때문에 소송을 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고 조중훈 회장은 4형제에게 계열사를 각각 상속했고 형제들은 이에 합의했다"며 "대한항공에 의지해 운영되는 브릭트레이딩사를 조양호 회장 몫으로 하는 것에 다른 형제들도 묵시적으로 동의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납품업체를 변경한 것은 통상적 경영권 행사로 볼 수 있다"고 원고 패소를 판결했다.

△정석기업 지분 둘러싼 소송전
2002년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별세하자 2005년 그룹의 지주회사였던 정석기업의 지분을 두고 소송전이 벌어졌다. 차남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가 장남 조양호 회장에게 유산 분배와 관련해 선친의 생전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소송을 걸었다.

이 소송은 조정호와 조남호 회장이 정석기업 주식 일부를 증여받으며 일단락됐다. 숙부인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과 외숙부 김성배 한진관광 고문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6만9057주를 조남호 회장에게 3만4528주, 조정호에게 3만4529주를 각각 증여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당시 한진그룹 지배구조에서 정석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다. 정석기업→한진→대한항공→정석기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의 정점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정석기업의 주인이 누가 되느냐’가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누가 손에 넣는가’라는 문제로 직결되는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 소송이 발생한 것이다.

이후 형제는 그룹의 사업권, 재산 등을 둘러싸고 수 차례에 걸쳐 소송전을 벌였다.


◆ 경력


1983년 대한항공 구주지역본부 차장으로 입사했다. 

1984년 대한항공 구주지역본부 부장으로 승진했다.

1989년 한일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1년 한일증권 상무이사에 올랐다.

1993년 한일증권 전무이사로 승진했다.

1995년 동양화재해상보험 전무에 올랐다.

1996년 동양화재해상보험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1997년 한진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1999년 한진투자증권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2000년 한진투자증권을 전신으로 하는 메리츠증권의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았다.

2000년 동양화재보험의 사명이 메리츠화재로 바뀌고 이사에 올랐다.

2000년 메리츠화재 전무이사를 역임했다.

2000년 메리츠화재 전무이사를 부사장을 맡았다.

2000년 메리츠종합금융이 출범하자 이사로 지냈다. 

2003년 메리츠증권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됐다.

2007년 6월 메리츠화재해상보험 상근회장과 비상근이사를 지냈다.

2011년 8월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에 올랐다.

2013년 6월 고액 연봉 논란을 의식해 메리츠금융지주와 메리츠화재 회장에서 물러났다.

2014년 3월 메리츠금융지주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경영일선에 다시 복귀했다.

◆ 학력

1978년 미국 보스턴의 사립고등학교인 대처(THACHER)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처고등학교는 조지 워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졸업한 학교다.

1983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4남1녀 가운데 4남으로 태어났다. 모친인 김정일은 2016년 12월15일 타계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 2006년 별세한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이 형이다. 조수호 전 회장 부인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이 형수다. 여자형제로 조현숙씨가 있다.

조양호 회장의 자녀들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민 한진칼 전무 겸 정석기업 부사장 등이 조정호의 조카다.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차녀 구명진씨와 결혼해 슬하에 조원기씨, 조효재씨, 조효리씨 등 1남2녀를 뒀다. 처제가 구지은 캘리스코 대표다.

장모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둘째딸 이숙희씨다. 이를 두고 조정호가 한진과 삼성, LG의 3대 그룹을 연결하는 인간고리 역할을 한다는 말도 있다.

◆ 상훈

◆ 기타

2019년 09월30일 기준 메리츠금융지주의 지분 68.97%를 지니고 있는 최대주주다. 메리츠종금증권 지분 1.01%도 보유하고 있다. 2020년 1월8일 종가 기준으로 보유한 주식 가치만 1조800억 원을 넘는다.

장녀 조효재씨가 메리츠금융지주 지분 0.05%, 메리츠종금증권 지분 0.05%, 메리츠화재 지분 0.03%를 보유하고 있다. 조원기씨와 조효리씨는 메리츠금융지주 관련 지분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조정호는 2019년 상반기에만 메리츠금융지주에서 급여 5억 원, 상여 9억6900만 원, 기타소득 1600만 원 등 14억8500만 원의 보수를 받았다.

메리츠금융지주의 실적이 좋아 배당금도 두둑히 받고 있다. 2018년 결산배당으로 메리츠금융지주에서 455억 원, 메리츠종금증권에서 13억 원을 받았다. 2019년에도 비슷한 수준의 배당금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영주권 보유자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 어록


“국내 최초의 보험지주 금융그룹으로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보다 알차고 강한 전문 금융그룹으로 거듭나자” (2011/08/01, 메리츠금융그룹 회장 취임사)

“양질의 사람들이 와서 일하고 싶은 회사, 명성이 높은 회사를 만들자.” (2009년, 최희문 메리츠증권 부사장을 임명하며)

“소매금융 위주의 영업에서 탈피해 자산운용에 승부수를 걸겠다.” (1997/06/10,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수년 동안 쌓아온 성과가 단 한번의 실수로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냉엄한 곳이 바로 증권시장이다. 종합적 위험관리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전담팀을 만들었다.”  (1997/06/10,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비즈니스포스트 박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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