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전과 과제
| ▲ 2018년 11월21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파멥신과 아주아이비투자 코스닥시장 신규상장기념식에서 (왼쪽부터) 최규준 한국IR협의회 부회장, 김성현 KB증권 IB총괄부사장, 정운수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장, 유진산 파멥신 대표이사, 김지원 아주아이비투자 대표이사, 김상태 미래에셋대우 대표이사, 송윤진 코스닥협회 부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KB증권 투자금융사업 전 부문을 고르게 키워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KB증권은 채권발행 주관에서 절대 강자로 평가받는데 이를 제외한 주식 발행, 인수합병(M&A) 자문 등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성현은 투자금융사업 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워뒀다. 2019년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는 직접 “올해 주식발행시장에서 3위 안에 들어 성과를 보여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2019년 하반기부터 발행어음사업을 할 수 있게 돼 기업금융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했다. KB증권은 2019년 5월 단기금융업(발행어음) 인가를 받아 앞으로 중소·중견기업을 상대로 영업도 강화한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KB증권은 2019년 초 투자금융부문에 별도 본부로 있던 중소·중견기업(SME) 조직을 확대해 기업금융2본부 산하에 편입했다. KB증권은 2019년 어음 2조 원어치를 발행해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단기금융업은 초대형 투자금융회사의 핵심업무로 꼽힌다. 증권회사가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으면 자기자본의 2배까지 만기 1년 이내 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이 자금으로 기업금융 등에 투자해 수익을 낼 수 있다.
김성현은 통합 KB증권 3년차를 맞아 덩치에 알맞은 내실도 다져야 한다.
KB증권은 2016년 12월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이 합병해 탄생했다. 자기자본 기준 국내 5위 대형 증권사로 거듭났지만 외형에 맞는 수익성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018년 순이익도 1788억 원에 그쳤다. 전년보다 무려 34.2% 감소한 수치로 이른바 빅5 안에 드는 다른 증권사의 순이익이 3천억~4천억 원대인 점과 대조된다.
KB증권은 2019년 초 출범 3년차를 맞아 그동안 축적된 역량을 중심으로 성장의 속도를 높이고 효율적 조직운영을 통해 시장 지배력과 수익성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한 중점 추진방안으로 핵심사업의 시장 지배력 강화, 신규 사업의 전략적 육성, 경영관리 효율화 및 디지털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해외사업도 빼놓을 수 없다.
KB증권은 2017년 11월 베트남 증권사 매리타임증권을 인수해 2018년 1월 베트남 현지 법인 KBSV를 출범시켰다. 그 뒤 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300억 원에서 1천억 원까지 키웠다.
KBSV는 2019년 1월 사이공지점 개설까지 마치면서 호찌민 2개 지점과 하노이 2개 지점을 포함해 베트남에 모두 4개 점포를 구축했다.
◆ 평가
| ▲ 2019년 1월8일 열린 KBSV 사이공지점 개설행사에서 김성현 KB증권 사장(왼쪽에서 네 번째), 박천수 KB증권 글로벌사업본부장(왼쪽), 응우엔 둑 호안 KBSV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 등 주요 관계자들이 축하인사를 하고 있다. |
증권업계에서 손꼽히는 투자금융 전문가다. 30년 이상을 기업금융부문에 몸 담아 전문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신증권에 입사해 기업금융팀장을 지냈으며 한누리투자증권에서도 채권발행시장부문에서 오랜 기간 경력을 쌓았다. 이를 기반으로 투자금융부문 전반으로 업무 영역을 확대했다. 채권발행시장부문에서는 한누리투자증권, KB투자증권, KB증권까지 그가 이끈 뒤 줄곧 1위를 지키고 있다.
소탈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함께 일하는 부하직원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에서 사회생활을 선택한 이유로 승부를 즐기는 스타일로 봤을 때 은행보다는 역동적 증권사 업무가 적성에 맞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인 1988년 11월 대신증권 명동지점에서 증권맨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입사 2년차 유학을 다녀온 직장 선배의 말을 듣고 처음 투자금융에 관심을 지녔다고 한다.
그 뒤 직접 인사부를 찾아가 IB업무를 하던 인수공모부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부장이던 임용택 전북은행장이 쓴 분석보고서가 논리정연해 특히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2000년 대신증권에 입사한 지 12년 만인 37세에 기업금융팀장에 올랐다. 초고속 승진이었으나 승진 3년 만에 대신증권을 나와 중소 증권사인 한누리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먹거리로 떠오른 회사채시장에서 제대로 벌어보자는 생각에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10년 안에 채권발행시장에서 1위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매일 5~6개 기업을 만나며 영업에 힘썼다고 한다.
30년 동안 투자금융부문에서 일하며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영업은 정직하다’라고 한다. 일단 만나야 하고 많이 만날수록 신뢰가 더 쌓인다는 것이다.
절제도 중요하게 꼽았다. 그는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내실을 갖추기도 전에 돈부터 빌려 사업을 키우는 회사는 꼭 문제가 터진다는 걸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배웠다”며 “이런 기업이 자금 조달을 자주 하기 때문에 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다고 한다. 2남3녀 중 장남이다.
대학 시절엔 웨이트트레이닝에 빠졌다. 입학하자마자 학교 근처에 있던 헬스클럽에 등록했다. 수업에는 지각해도 운동은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교 3학년 때 교내 보디빌딩대회인 ‘미스터 연세’에 출전해 결선에 오르기도 했다. 한껏 땀 흘리고 난 뒤 느끼는 개운함과 노력한 만큼 몸이 바뀌는 게 좋았다고 한다. 당시 체력을 다져 지금까지도 몸무게 70㎏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