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정치와 무속은 한 뿌리인가, 역술 풍수지리 사랑한 정치인은 누구
등록 : 2021-10-20 14:16:23재생시간 : 10:53조회수 : 5,013임금진
정치에 무속과 관련한 논란이 자주 따라붙는 이유는 뭘까? 

대통령선거를 앞둔 경선 국면에서 느닷없이 무속 논란이 불거졌다. 국민의힘 유력 대통령선거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손에 왕(王)자를 쓰고 TV토론에 출연하고 도사 같은 사람을 멘토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경선 경쟁자는 “무속이 나오고 부적이 나오고 항문침이 나오고 급기야 도사까지 나왔다. 참 추접스럽다”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에는 무속이 미신이라는 평가절하의 의미도 깔린 셈이다.

사실 무속이나 역술, 풍수지리 등이 정치인과 얽힌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조금씩은 이런 것들과 인연을 맺었다.

◆ 정치인의 은밀한 무속 역술 풍수지리 사랑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주자유당 후보로 대선을 눈앞에 둔 1991년 민자당은 서울 종로 관훈동에서 여의도로 당사를 옮긴 적이 있다.

그런데 한 무속인이 관훈동 당사가 닭벼슬 터라며 이곳을 떠나면 대선에 안 좋을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닭의 벼슬은 예로부터 관직을 상징하곤 했다. 관훈동 당사 자리는 풍수지리적으로 “산자락이 끝나는 능선과 물이 만나는 곳으로 음과 양이 모이는 혈 터”로 평가된다. 

그래서 민자당은 여의도로 당사를 옮기면서도 관훈동 옛 당사를 그대로 두고 거기에 김 전 대통령의 사진을 뒀다고 한다. 1992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정주영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독실한 개신교 장로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직접 무속인의 말을 듣고 그렇게 했는지 참모진들의 조언을 따른 것인지는 몰라도 정치와 무속이 밀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천주교 신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부모님 묘소를 옮겼다. 원래 아버지의 묘소는 전남 신안에, 어머니 묘소는 경기도 포천에 있었는데 이를 경기도 용인 봉리산에 함께 이장했다. 그곳은 지관들에게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오는 명당”이란 평가를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7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때 김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던 이회창 후보는 그 뒤 3번이나 조상 묘를 옮겼다. 이 밖에도 여러 정치인이 조상 묘를 이장한 게 화제가 되곤 했다.

대선주자뿐 아니라 중진과 신진을 막론한 정치인들 적지 않은 수가 무속, 사주, 관상 등을 참고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대선이나 당대표 선출 때가 되면 ‘내가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를 궁금해하며 무속인이나 역술인들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

지금 같은 대선 무렵이면 유명 무속인, 역술인을 찾는 발걸음이 많아져 문전성시를 이룬다.

◆ 윤석열의 큰 꿈과 무속 논란, 무속인을 가까이 두는 리더들

야당의 유력 대선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무속 논란은 손바닥에 왕(王)자를 새긴 데부터 시작됐다. 

윤 전 총장이 출연한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TV토론회를 보면 손바닥에 王자가 쓰여 있는 게 보인다. 처음엔 지지자가 써 준 것이다, 손을 씻었지만 손가락 위주로 씻어서 안 지워졌다는 식으로 해명했다.

하지만 한 번의 TV토론회에서만 王자를 쓴 게 아니라 매번 토론회 때 손에 王자를 적은 게 포착되면서 전에 했던 해명이 다소 궁색해졌다.

손바닥에 새기는 王자가 ‘말발이 달리거나 가기 싫은 자리에 갈 때 손쉽게 사용하는 셀프 부적’의 무속적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 온라인상에서 널리 회자하기도 했다.

게다가 윤 전 총장이 천공스승이란 인물을 멘토로 뒀다는 얘기나 부인 김건희씨의 무속 의존 논란도 같이 불거졌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다. 유승민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윤 전 총장의 王자를 놓고 “오방색 타령하던 최순실 같은 사람과 윤 후보는 뭐가 다른가”라고 지적했다.

유 전 의원이 오방색과 최순실 얘기를 꺼낸 것은 오방낭 논란 때문이다.

국정농단의 증거자료가 됐던 문제의 최순실 태블릿PC에는 대통령의 연설문 등과 함께 오방낭 파일이 나왔다. 오방낭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때 등장했던 것이기도 하다. 오방낭은 박근혜 정부의 미신에 의존한 통치행위의 상징물로 꼽힌다.

최순실씨 아버지는 최태민 목사 일화도 박근혜 정부의 미신통치 논란을 가중했던 원인이다. 최 목사도 무속적 성향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신흥종교 전문가인 탁명환 전 한국종교문제연구소장이 최태민 목사의 행적을 추적한 증언에 따르면 최태민은 무당으로 활동하다 개신교 목사로 변신을 했다. 기독교, 불교, 천도교를 융합한 영세교를 창시한 사람이란 설도 있다.

최태민은 박정희정권 시절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도 무성하다.

무속인이나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정치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은 암암리에 꽤 된다. 어떤 정치인은 무속인을 데리고 다니며 일을 결정할 때 꼭 물어보는 등 비합리적 태도를 취한다고도 한다.

정치권뿐 아니라 재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더러 있었다.

최태원 SK 회장은 무속인으로 알려진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의 말을 듣고 투자를 했다가 구속까지 되는 고난을 겪었다.

손길승 전 SK회장이 최 회장에게 김 전 고문을 처음 소개해줬고 최 회장은 한 살 어린 김 전 고문에게 존댓말을 쓰며 깍듯하게 대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삼성 이병철 창업주,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등은 재계 ‘역술 애호가’로 꼽힌다. 이병철 회장은 신입사원 면접 때 역술인에게 관상을 보게 했다는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 한국인에게 무속이란? 리더들은 왜 무속에 의존할까?

리더들은 무속에 의존하는 걸까?

한국인 정신세계의 기저에 무속이나 민간신앙적 요소가 뿌리깊이 박혀있다는 해석도 제법 있다.

한국 역사를 고대 한국인이 한반도 주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기원전 8천 년부터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약 1만 년의 종교·신앙적 흐름이 있었던 셈이다.

아마도 무속은 선사시대부터 시작됐을 테니 대략 8천 년 동안 한국인은 무속신앙을 믿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불교가 최초로 고구려에 전래된 게 소수림왕 때인 서기 372년이고 그 뒤 불교가 번성했던 고려시대가 끝나는 1392년까지 대략 1천 년은 불교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억불숭유를 했던 조선시대 500년은 유교의 시대, 근래 200년은 기독교가 전래돼 널리 확산된 시대다.

주류 신앙이 변했다고 해서 과거의 신앙체계가 결코 없어지지는 않는다. 기층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오래 믿어왔던 대상을 향한 믿음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 신앙의 흔적은 여러 가지 형태로 사람들 곁에 남게 된다.

가령 영화 ‘신과 함께’를 보더라도 전생, 윤회, 사후 세계 등의 불교적 세계관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성주신’과 같은 무속신앙 요소도 스며들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도 결혼이나 이사 등에 손 없는 날을 선택한다든지 해가 짧아 음기가 성하다는 동짓날에 벽사의 의미로 팥죽을 먹는다든지 하는 민간신앙 요소가 남아 있다.

기본적으로 무속은 기복신앙 요소가 강하다. 오늘날 불교나 기독교의 기복신앙 요소를 무속의 영향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많다.

결국 무속은 기원전 8천 년부터 유유히 이어져 온 원초적 심리인 만큼 정치인을 비롯한 리더들의 무속 의존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리더들이라고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다. 리더들은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와 부담을 안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점심때 뭐 먹지?” 따위의 고민을 하다가 집을 사거나 큰 거래를 해야 할 때, 작은 일이라도 소송거리를 만났을 때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하물며 전쟁 같은 정치세계에서, 수천억~수조 원이 달린 기업경영의 현장에서 정점에 있는 리더들의 스트레스는 매우 클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무속 등에 의존하는 게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지도 모른다.

리더들은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고 비전을 지지자나 조직원들에게 설득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과연 스스로는 미래를 정확하게 내다 볼 수 있을까?

안갯속 같은 앞날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힌 상황에서 초자연적 힘에 의지하고 싶은 것은 나약한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심리이기도 하다 .

때로는 리더들이 무속 등을 통해 자기실현적 예언을 성취하는 일도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MBC 집사부일체에 출연해서 점쟁이가 “대성할 것이다”고 했던 말이 실제로 힘이 됐다고 한 적이 있다. 일종의 자기암시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여러 성과를 거두는 데 도움이 된 셈이다.

한편으로는 정치와 무속이 결국 한 뿌리라는 시선도 있습니다. 한국인의 시조라는 단군왕검이 무당이자 군장이었다는 게 역사학계의 대체적 시각이기도 하다. [채널Who 류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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